- 이 한 편의 수필/ 송정자
내가 유자라면
수필가 송정자
[대한기자신문 이산 대기자] 초겨울 밤바람이 맵싸하게 달려든다. 고속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다. 저녁 일정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터미널 주변에 차를 세우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친정오빠는 이튿날 아침 일찍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하기 위해 늦은 밤 거제도에서 올라오는 중이다. 버스가 도착하자 자신이 환자인 것도 잊었는지 하얀 스치로폼 박스를 번쩍 치켜들어 보이며 뒷자리에 싣는다.
거제도 유자는 유난히 상큼한 향이 강하고 샛노란 색깔이 햇살같이 예쁘다. 온화한 기후지만 몇 번의 서리와 바다바람을 이겨낸 과실은 과피가 두껍고 유포가 많아 탱글탱글하다. 사등면 유자밭의 유자는 약을 치지 않아 울퉁불퉁하면서도 탐스런 황금빛을 지녀 천연 감기약이라고 부른다. 11월이면 지인의 농장에서 김장 고무다라를 놓고 넘치도록 유자를 따서 담는다. 몇날 며칠 두 내외가 신문지 깔고 앉아서 어깨가 내려앉도록 유자를 총총 썰어 청을 만드는 일이 연례행사다. 겨울 내내 누이집, 동생네, 딸자식들이 감기 들지 말라고 예방치료약을 여기저기 택배로 보내왔다.
올해는 병원 오는 길에 긴 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내게 직접 전달해 준 셈이다. 오빠는 몇 주 전부터 음식을 잘 먹지 못해 몸무게가 쑥쑥 줄어들었다. 지방의 병원에서 서울 종합병원으로 암 검사 의뢰를 해준 상태다. 우리집에 며칠 있으면서 진료 날짜에 맞춰 검진을 하고 다음 예약일이 길어져 잠시 거제도로 내려간 터였다. 해거리를 하는 유자나무는 올해 따라 유독 다닥다닥하게 열렸단다. 그 와중에 유자를 따고 씻어 말려서 방안 한가득 쌓아놓고 바닥에 앉아 유자를 썰고 또 썰어 스무 여개의 병에다 차곡차곡 쟁였다. 올해는 힘이 부쳐 못다 썰고 남겼다고 한다.
소반 위 일찍 익은 붉은 감 곱기도 하다
유자가 아니라도 품고 갈 만 하지만
품고가도 반길 사람 없으니
그것으로 인하여 서럽구나
박인로의 시조 ‘조홍시가’를 현대어로 풀이한 글이다. 여기에 ‘유자가 아니라도’ 라는 구절이 있다. 효심을 노래한 시조다. 노계 박인로가 경상도 도체찰사로 갈 때, 한음 이덕형이 접대로 내어놓은 홍시 감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육적회귤의 고사가 떠올라 이 시조를 지었다. 육적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왕의 참모를 지낸 사람인데, 6살 때 당시 최강의 군벌이었던 원술을 만났다. 육적에게 먹으라고 귤을 주었다. 먹는 시늉만 하다 원술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귤 3개를 품속에 감추었다. 돌아갈 때가 되어 원술에게 인사를 올리자 품에 있던 귤이 데구르르 굴렀다. “육랑은 손님으로 와서 어찌하여 귤을 품에 넣었는가” 연유를 물으니 집에 가서 어머니께 드리려 했다는 어린 육적의 효심에 원술이 감동했다는 내용이다. 이 고사에서 유래하여 육적회귤은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비유하는 글로 쓰이고 있다.
오빠는 아들 셋 중에 막내로 큰아들 둘을 잃은 엄마에게는 금쪽같은 자식이었다. 하나 남은 아들이 어찌 될까 봐 얼마나 벌벌 떨었을까. 애지중지 귀하게 사랑받은 자식이 잘 되는 일 별로 없다는 옛말이 있다. 오빠는 젊은 날 사업이 번창하는 바람에 기고만장하여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허세를 부리며 살았다. 자연히 관리에 소홀했고 남을 말을 잘 듣지 않아 사업체가 기울어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큰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이혼까지 하는 사태를 맞이했다. 엄마는 손녀 둘을 도시락 싸 줘가며 몇 년을 키우면서 집까지 팔아 턱도 안 되는 오빠 빚이라도 보태주었다.
오빠내외가 만든 유자청은, 흥건한 설탕물에 유자 몇 쪽 둥둥 떠다니는 시중의 상품과는 모양새부터가 다르다. 두꺼운 껍데기를 잘게 채 썬 샛노란 유자가 병속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노오란 껍질 표면에 거뭇거뭇한 주근깨가 좁쌀처럼 총총하게 달라붙어 있어도 그조차 정겹다. 유자차는 끓는 물을 잔에다 부어 우려먹는 것보다, 유자와 물을 넣고 같이 끓여서 마시는 것이 훨씬 상큼한 맛이 깊다. 숟가락으로 유자 껍데기를 건져내어 씹으면 쫀득하고도 달큰한 단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된서리를 맞고서야 뒤 돌아보는 삶이다. 자신의 몸 상태를 느끼고 나서 이제부터라도 잘 살아보겠다고 한다. 불효했던 엄마에게 늦은 속죄라도 하려는 것일까. 비록 귤이나 유자가 아니라도 품에 안고 갈 만하지만 가도 반겨줄 이가 없으면 그것이 서러운 일이라 했다. 육적이 귤 3개를 어머니에게 주려 품에 감췄듯이 저 세상에 계신 엄마대신 피붙이에게 유자라도 주려는 것일까. 살만하면 탈이 난다더니 세상이치가 틀린 것이 하나가 없다. 새로 만난 올케와 따듯한 남쪽 바닷가에 장만한, 볕 잘 드는 집에서 이제 도란도란 살날 만 남았건만. 지난한 몸부림의 흔적들도, 아스라하게 흘러간 시간도 오빠의 무연한 표정 속에 묻어있다. 이번 겨울이 퍼르퍼르 흩날리는 진눈깨비 마냥, 잠시 어깨만 스치듯이 지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자차를 다 마셔갈 쯤이면 봄은 오고 있을 것이다. 내가 유자라면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나는 계속 유자청이 되어 고속버스 타고 여행가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고 싶다.
▼경남 밀양 출신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미미래수필문학회 회원
정독도서관 다스림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