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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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대 사범대 졸업, 중고교 교사 역임, 2023년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정독수필 회원

우리 곁의 순영이들

 

 

                                                                                                                              박선주/수필가

 

신문 기사 한 토막에 눈길이 멈춰졌다. 혼자 살던 40대 탈북여성이 백골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겨울옷을 입은 채였다고 하니 숨진 지 거의 1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녀는 한때 성공한 탈북민 상담사로 언론에 소개까지 된 사람이라니 더욱 안타까웠다. 그녀의 이야기는 불현듯 십 년 전쯤 우리 집에서 하루를 묵어간 탈북민 순영이와 송옥, 그 뒤에 왔던 은희와 영미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 순영과 송옥은 40대 초반, 은희와 영미는 20대 초반이었으니 아마 지금은 오십대, 삼십대가 되었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염려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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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주 수필가(한국수필가협회, 정독수필 회원)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온 사람들은 제일 먼저 국정원의 철저한 조사를 받는다. 탈북민이 확실할 경우 하나원이란 국가 정착 지원 시설에 3개월간 머무르며 남한 체재 전반에 대한 교육과 적응 훈련을 받는다. 그 기간 중 두 번 남한의 일반 가정에서 일박하며 홈스테이 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 교회에서 그 활동을 돕고 있어 우리 부부 도 지원했다. 홈스테이 할 때 정해진 특별한 규칙은 없지만 당국에서 부탁한 것은 너무 과도한 친절을 베풀거나 물품이나 돈을 주지 말 것과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 경제를 익힐 수 있도록 꼭 시장이나 마트는 데리고 가 한 번 이상 경험시키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두 번 있었던 홈스테이 기간 중 제일 먼저 우리는 그들을 데리고 마트 체험을 하게 했다. 카드 사용이 일반화되었지만 남한 화폐의 단위를 구별하고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그들에게 직접 돈을 주어 계산하게 했는데 우리 돈의 큰 단위에 많이 어려워했다. 그들은 우선 어마어마한 상점의 규모와 다양한 상품들의 종류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일산의 명소인 호수공원도 가고 저녁을 먹으러 동네 갈비 집에도 들렀다. 그들은 자유롭게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부러움의 눈길로 한참을 바라봤다. 두고 온 가족들 생각 때문인지, 남과 북의 메꿀 수 없는 입맛 차이 때문인지 너무 달고 짜다며 음식도 잘 먹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순영 씨는 키가 크고 생김새도 시원시원하고 성격이 활달한 편이었다.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바퀴 휙 둘러보더니 깔깔 웃으며 이 집은 남한에서 상류층은 아니고 중간내기 집이네요!”라고 했다.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고 물었다, 중국에 있을 때 한국인 사업가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7년을 살았는데 공안이 무서워 밖에도 못나가고 한국 드라마를 시간 날 때마다 봐서 한 번만 봐도 척이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탈북과정과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송옥은 친정에 빌려준 돈 때문에 남편과 불화를 겪다가 중2 아들을 남겨둔 채 중국으로 돈 벌러 나왔다가 탈출했고 영미와 은희는 어릴 때부터 꽃제비 생활을 거쳐 한국에 왔단다.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북한의 실상들이 다소 과장되었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것은 기가 막힌 찐 현실이었다.

 

모두의 사연이 다 짠했지만 순영의 지난날 얘기는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벌써 세 번이나 결혼했다. 이른 나이에 한 첫 결혼은 화재로 남편이 죽으면서 끝이 났다. 굶주리는 아들과 시부모를 보다 못해 중국으로 돈벌이를 떠났다. 돈 많이 준다던 농산물 가공공장에 가보니 늙은 중국인 남편에게 인신매매로 팔려왔다는 걸 알았다. 밤낮으로 농사일과 성 착취에 시달리다 북한이 아사자로 넘쳐난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다시 목숨을 걸고 북한으로 넘어갔다. 돌아가 보니 우려대로 아들은 영양실조로 이미 사망한 뒤였다. 브로커를 수소문해 다시 중국 장춘 쪽으로 탈출했고 이번에는 다행히 한국인 사업가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취직해 비교적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누렸다고 했다.

 

사장 집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던 조선족 청년과 사랑에 빠져 살림을 합쳤고 오랜만에 행복이라는 단꿈도 꾸었다. 그것도 잠시 이웃집 탈북자 여성 한 명이 공안에 잡히면서 단속은 점점 강화되었다. 중국어를 잘 못하는 그녀에게 닥친 위험은 점점 커갔고 한국행 외엔 대안이 없었다. 7년 동안 힘들게 모았던 모든 돈을 동거남에게 주고 몽골과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여정은 험난했고 목숨이 위태했던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브로커가 마련해준 은신처에 갇혀서 기약 없이 기다리기도 했고 끝없이 이어지는 몽골 사막에서는 길을 잃어 햇볕에 바짝 마른 미이라가 되어 죽겠구나라는 공포가 밀려왔다고 했다.

 

보통의 우리네 삶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질곡의 삶을 견뎌온 그녀였지만 표정은 밝았고 그 힘든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풀어내었다. 순영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대로 마루며 부엌 구석구석을 청소하려고 했다. 걸레를 뺏고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긴 시간 집안일을 직업적으로 해온 이유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바지런함이 몸에 밴 듯했다. 이런 부지런함과 친화력이라면 어디에 가 살던 지 꿋꿋하게 살아 낼 수 있겠다 싶어 안심이 되었다탈북민들이 하나원을 나오면 임대아파트와 2,000만 원의 정착지원금이 그들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아파트 보증금과 탈북과정에 브로커들에게 진 빚을 갚고 나면 수중에 쥐는 돈은 몇 푼 남지 않는다. 취직을 하더라도 탈북자들의 평균 소득과 직업 안정성은 남한 일반 국민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대부분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사채를 빌려서라도 송금하고 있고 자본주의의 사정에 어둡다 보니 사기도 자주 당한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 자립은 쉽지 않고 사회에서 낙오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의 사정이 딱해 집에 있는 안 쓰는 가재도구나 옷이라도 나누어 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금지사항이었다, 우리들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요청해 폐를 끼칠 수도 있고 의존심을 키울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남한 사회에 적응 못하고 북한으로 재월북하거나 제 3국으로 이민 가는 숫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절대 빈곤이 사라진 한국에서 그들이 한 줌의 쌀이 없어서 그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목숨을 걸고 넘어온 한국에서 편견과 차디찬 시선의 벽에 계속 부딪히며 살아갈 희망을 잃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먼저 온 통일의 전령사들이다. 그들이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라도 붙잡고 이 땅에서 든든하게 뿌리 내려야 할 이유이다. 며칠 전 20대 청년 탈북자의 죽음이 또 발견되었다. 같은 얼굴, 같은 언어를 쓰는 뿌리가 하나인 우리의 동포이며 형제이지 않은가. 언제까지 이런 비보를 계속 들어야 할까.

 

▼박선주

경북대 사범대 졸업, 중고교 교사 역임,

2023년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정독수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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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주 수필가, 수필 '우리 곁의 순영이들', 새터민의 애환을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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