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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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명란 수필가는 '백미문학' '문학미디어' '에세이문예' 문학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문학미디어 작품상 문학미디어문학상 세종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권대근 교수의 서평을 단 수필집 '서래섬의 실루엣'이 있다

                                                                            향기로 남아계신 선생님께

 

 

                                                                배명란


 

바울라 선생님, 선생님께서 천국에 입회하신 지도 벌써 한 해가 지났습니다. 거기서는 편히 계시는지요. 혹 하늘나라에서도 할 일을 찾아 바쁘게 지내시나요. 선생님은 끊임없이 도울 일을 찾는 분이셨으니 거기서도 그러실까요. 요양원에 가셨다고 해서 한 번 찾아뵙고 이어서 온 팬데믹 때문에 삼 년 넘게 뵙지 못했지요. 다시 찾아뵐 생각을 하던 차에 부음을 듣고 또 한 번 애통해야 했답니다. 섬겨드려야 할 어른들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두 번이나 겪고도 삼세번을 채우고 말았습니다.

 

배명란 사진.jpg

                                                                     ▼배명란 수필가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92년 늦은 봄, 레지오 저녁 팀에 입단하려고 성당에 갔을 때였습니다. 선생님은 사랑의 모후팀의 단장님이셨습니다. 단장님과 단원들은 성전 입구 옆 아이 방의 책상 둘레에 앉아 주회를 하고 계셨어요. “어서 와요. 스스로 찾아오니 더 반갑네요.” 단장님께서는 발음이 명확하고 앉은 자세가 꼿꼿하여 교사이셨나 생각했지요. 제 나이를 묻고 내 둘째 딸과 동갑이구먼.’ 하셨고요. 제가 학교에 있다 하니 더 반갑네. 나는 정년퇴직했고요. 여기 계신 분들도 선생님이에요.’ 하신 말씀으로 첫 만남을 포근히 해 주셨죠. 단장님은 우리 단원들을 댁으로 자주 부르셨어요. 가정방문을 했을 때, 병원 방문 후 등, 단체활동 후에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셨지요. 제 집에는 모시지 못하면서 부름을 받아 가는 일은 기뻤어요. 단장님의 남다른 삶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거든요. 단장님은 초대하는 일을 어렵지 않게 여기시는 듯 보여 저도 나이 들면 그리될까 했답니다. 그런데 열린 마음이 부족했을까요, 손님을 모시는 일은 쉽지 않더군요.

 

선생님 댁에 처음 갔을 때 몇 번 놀랐어요. 마당에나 있을 법한 크기의 성모상이 그 하나였습니다. 단독주택 너른 마당을 지키다 아파트로 모셔 왔다고요. 그 성모상이 있어 어머니의 집이라는 이름이 선생님 댁에 어울렸나 봅니다. 방에서 웬 처녀가 나오길래 누구인지 궁금한 얼굴인 제게 아기엄마라고 하셨죠. 뜻하지 않게 미혼모가 되었지만, 생명을 선택하여 예쁘다 하셨고요. 갈 곳 없는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기꺼이 받아들이셨다죠. 출산 전 예비 엄마들에게 심신의 안정을 돕고 독립할 수 있도록 배움의 길도 알선하신다기에 놀랐어요. 칠십 년대, 주택에서 시작한 어머니의 집을 저와 만나던 아파트에서도 진행 중이었으니 드릴 말씀을 잃었습니다. 춘천 수녀원의 미혼모 돕기 규모가 커지자, 선생님의 생활공간과 생활비를 이십 년 가까이 나누시다니요. 그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아기엄마는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살았고, 거쳐 간 아이들의 중고교 학비도 계속 지원하셨다고요. 이런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압니다. 그들을 사회에서 수용하게 될 때까지 함께 하신 선생님은 마더 테레사셨네요.

 

선생님은 해방 후에 교사가 되셨고 곧 어른을 위한 한글학교를 시작하셨다지요. 한국전쟁 중에 납북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두 딸을 기르는 중에도 어른을 위한 배움 교실은 계속하였다니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해 개인의 슬픔은 접어두는 공인이셨어요. 선생님의 도움으로 글공부와 수셈을 익혀 아이들 교육과 장보기에 활용하게 된 분들은 움츠렸던 어깨를 펴지 않았을까요. 배움을 나누어 타인의 사회생활을 돕는 일 역시 이웃을 내 몸처럼 돌보는 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많은 어린이들과의 수업을 마치면 다시 연세 드신 분들을 맞이하였다니 투철한 교사의 사명감을 사회의 취약 지구까지 넓힌 개척자이자 사랑의 실천가셨어요. 학교에서만 그러셨나요. 돌아오면 연로한 시모를 받들고 두 딸을 돌보셨어요. 딸들이 가정을 이루어 떠나자 남은 방에 바로 어머니의 집을 마련하고 미혼모들과 함께 사셨고요. 장수하신 시어머니께서 잔디밭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는 사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퇴직 후 새로 시작한 일 역시 힘든 일이었습니다. ‘전화상담이었지요.

 

선생님께서는 매주 전화상담소에 나가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이는 도움을 받기 위해 전화를 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이야기 물꼬를 트려고 질문하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체력을 소모하셨을까요. 곱고 또렷한 데다 자애로움 가득한 선생님의 음성은 신청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힘을 주었을 것입니다. 의욕을 가지고 상담자로 나섰던 분들이 그만두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선생님은 더 오래 많은 몫을 담당하셨지요. 상담하는 일도 사명감을 갖추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지나치지 않는 선생님의 따스한 인정이 십여 년도 넘게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택에서 사실 때도 대문을 열어놓고 동네 아이들과 미혼모의 아이들이 함께 뛰놀도록 미끄럼틀 등의 놀이시설, 장난감, 간식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했어요. 가정불화나 폭력을 당하는 분들의 상담, 휴식, 피난처로 안방까지 내주느라 거실 마루 냉골에 자리를 폈다는 이야기는 박상주 작가의 수필집비상을 꿈꾸며삶의 쉼터에서 읽고 그때부터 이미 동네의 위로자, 상담자이셨음을 알았습니다.

 

상담이 끝나시자 다음의 일은 재봉이었습니다. 고속버스터미널 옷감 가게의 자투리 천들이 단장님과 단원들의 협동으로 크고 작은 주머니가 되었습니다. 성모상을 담아 옮기는 큰 주머니가 새로 생기는 팀에 나누어지고, 작은 주머니는 단원들과 교우들에게까지 나누셨지요. 저도 도운 것 없이 얻어 가진 주머니들을 단장님 보듯 쓰고 있습니다. 장례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은 선생님께서 어머니의 집운영, ‘상담 기관 전화 봉사’, 문맹 퇴치 일, 사십 년이 넘는 레지오 활동 등의 노고를 치하하셨어요. 생전에 평화신문에서 드리는 가톨릭대상사랑 부문 상을 받았던 일도 처음 들었답니다. 상패나 감사패, 감사장이나 상장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말씀하시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장례식은 가득히 앉은 옛 단원들과 동료 교사들과 함께 선생님의 진한 사랑의 향내에 흠뻑 젖은 시간이었답니다. 제가 아는 큰 덕행만 일부 옮겼지만 이밖에 감추어두신 선행은 얼마나 많을까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셔서 가족도 잘 모르는 일이 많았으니 저와 같은 이는 오죽할까요.

 

주변을 하느님 나라로 만드시던 단장님, 저희가 이웃사랑 활동이 부족하다고 말씀드리면 가정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셨지요. 저희에게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셨고요. 그날 장례식 참석자들은 제각기 자신이 만들고 있는 하느님 나라를 돌아보지 않았을까요. 천국에 계신 분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지상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들었습니다. 도울 일을 찾으시는 선생님께서 저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면 지원군을 가진 것처럼 든든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사행 바울라 선생님, 지구별의 환경과 평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선생님의 향기 속에 잠기는 저희들도 기억해 주소서.

 

배명란

-백미문학, 문학미디어, 에세이문예,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학미디어 작품상 수상

-문학미디어문학상, 세종문학상 수상

 

-수필집 : 서래섬의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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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편의 수필, 배명란 수필가의 '향기로 남아계신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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